연합국들의 신탁통치 계획안의 전개
[목차]
1. 카이로의 정상회담과 카이로선언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1943년 11월 이집트 의 카이로에서 열린 미국과 영국 및 중국 세 나라 정상 회담에 제시하여 동의를 받았다. 그리하여 카이로 선언은 일제가 패망한 뒤 조선에게 「적당한 시기와 절차를 거 처」독립을 준다는, 말하자면 조건부 독립을 약속하게 되었다. 조선에 관한 이러한 양해는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며 내각 수상인 스탈린이 참석한 테헤란 회담 및 1945 년 2월의 얄타 회담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스탈린은 한반 도문제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신탁통치도 필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으나 미국과 영국 및 중국의 양해를 묵인한 것이다. 그리하여 1945년 2월 포츠담에서 발표된 연합국 수뇌들의 공동선언 [포츠담선언]에서도 다시 확인되었다.
2. 신탁 통 치안의 계획안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조선에 대한 신탁통 치안은 하나의 구체적 계획안으로까지 정밀화되지는 않았다. 그저 미국과 영국과 중국과 소련 네 나라로써 신탁통치를 실시한 뒤 독립을 부여한다는 수준의 양해만 있었을 뿐, 신탁통치의 기간,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국가 들과 조선과의 관계, 신탁통치의 주요 과제, 신탁통치를 끝내고 조선에 독립을 주는 방식 등등의 문제에 대해서 는 아무런 합의가 없었다. 이처럼 구체적인 방법론적 설계도 마련하지 못한 채 조선의 독립만을 연기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일본 패전 후의 한반도에서 정치 적 혼란과 이념적 갈등을 깊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책임은 큰 것이다.
3. 전시 연합국회담의 결론
이상에서 살핀 것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전시(戰時) 연합국회담이 합의했던 내용의 전부이다. 흔히 전시 연합국 회담에서,, 특히 1945년 7월의 얄타회담에서, 한반도 의 분단이 비밀리에 약속된 것으로 말해지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미국 혼자서 한반도 분할을 생각한 적은 몇 차례 있었다. 한반도에서 일본 군대와 싸우게 될 경우에 대비해 연합국들이 공동으로 진공 하는 방법을 구상하 면서 자연히 몇 개의 안을 마련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자신의 안(案)을 연합국들 가운데 어느 나라와도 논의하지 않았다.
'역사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제 식민지배와 항일독립운동 (0) | 2022.09.30 |
|---|---|
| 연합국과 우리 겨레의 대응 (0) | 2022.09.28 |
| 루즈벨트 대통령의 신탁통치 개념 (0) | 2022.09.27 |
| 연합국의 전시회담과 국제적 관심 (0) | 2022.09.26 |
| 국내 단체들의 항일운동 전개 (0) | 2022.09.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