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국과 우리 겨레의 대응
[목차]
1. 연합국과 약소민족
연합국이 이처럼 자신들 마음대로 한반도의 운명을 점하고 있을 때 우리 겨레의 누구도 거기에 참여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카이로선언이 발표된 뒤, 임정이 나서서 왜 즉각적인 독립이 아니고 「적당한 시기와 절 차」를 거친 뒤의 독립이냐고 그저 항의하는 것이 고작이 었다. 그것이 나라 없는 약소민족의 슬픔이었다.
2. 무장단체들의 국내 진공 준비
그렇다고 해서 우리 겨레가 무력하게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우선 해외를 보면, 임정은 1944년 중국 대륙에 있던 좌우파의 협력을 어느 정도 더욱 굳혀 내각을 보다 넓은 지지 기반 위에 세워 놓았다. 임정 산하의 광복군 은 미군과의 제휴 아래 국내로 진공해 들어갈 준비도 갖춰가고 있었다. 임정은 또 좌파의 조선독립동맹과도 손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정이 실질적으로 좌우파 의 연합을 이룩한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말할 것 없고 좌파의 상당한 부분은 임정을 무시했다.) 그밖에도 임정과 관계없이 지내던 몇몇 항일 무장 단체들은 국내로의 진공을 준비하고 있 었다.
3. 건국동맹과 지하조직
국내를 보면, 일제의 단말마적 탄압 속에서도, 건국동맹 같은 지하 단체가 1944년 조직되었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동맹은 좌우파를 망라하여 얼마 남지 않은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에서의 항일 지하조직의 활동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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