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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

조선왕조 말기 외세의 조선 침략과 대응

by 리치드리퍼 2022. 9. 19.

조선왕조 말기 외세의 조선 침략과 대응


[목차]

    1. 조선왕조 말기와 사회문제

    서기 1392, 그러니까 14세기 무렵에 세워진 조선은 16세기 끝무렵에는 일본과 전쟁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치루고 17세기 중반에는 만주족과 전쟁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치룬 뒤 나라의 힘이 점점 기울어 갔다. 이와 이 붙어 조선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예컨대 봉건 사회 의 경제적·사회적 모순들이 점점 두드러지면서 왕조의 불운이 오고 있었다.

    이것을 서동점()이라고 부르는 데, 이 물건 앞에서 중국은 무릎을 꿇고 말았고, 일본은 이른바 명치유신(明治)을 통해 재빨리 근대화의 길 을 걸어 그 스스로가 침략주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우선 조선왕조를 겨냥하고 쳐들어 왔다. 당황한 조선왕 조는 이에 굴복하여 1876년 강화도에서 조약을 맺고 마침내 나라의 문을 열고 말았다.

    2. 조선왕조 말기와 개혁의 주장

    안정이 밑으로부터 천천히 흔들려 갔다. 이러한 역사의 변동기에 한 무리의 큰 개혁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조선의 역사에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신학 파가 바로 그것이다. 유형원(柳馨)과 이익() 같은 이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은 조선왕조의 병폐를 제도적으 로 크게 개혁할 것을 주장했는데,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걸쳐 살았던 정약용(丁若鏞)과 같은 큰 학자에 이르러 민본주의적 혁신사상이 사실상 집대성되었다. 한 전 실학과 안에서 자라난 복학론(北學論)도 조선왕조의 혁신을 주장했다

     

    3. 민족내부의 개혁사상과 실학자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이러한 개혁사상은 불행히도 붕건왕조의 지배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리하여 19세 기에 들어와 실학사상은 퇴조하게 되었고, 실학사상이 계시하는 방향으로 조선이 자주적으로 근대화할 수 있는 길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역사에는 만일 그랬더라면이란 가정()이 소용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실학자들의 길을 따라 스스로를 개혁해 근대화를 성취했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그랬더라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마침내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는 비극들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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