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위기와 세가지 대응
[목차]
1. 조선왕조의 위기
어떻든, 조선왕조가 자주적인 근대화의 길을 밟지 못 한채 세도정치와 반동정치의 해에 묶여 있는 동안, 이미 제국주의로 바뀐 서양의 세력이 동양으로 침투해 조선왕조가 이처럼 남에게 끌려 개국하자 왜국 , 서양의 외세문이 너도나도 모두 밀려 들어 왔다. 여기서 조선왕조의 위와 아래는 비로소 국가적 위기를 느끼고 그 대응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크게 보아 세갈래로 나타났다.
2. 조선왕조의 첫번째 대응, 위정척사론
위정척사론(正斥邪)이다. 외세는 모두 사악 한 것이니 이들을 배척하고, 옳고 바른 우리의 고유질서 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최익현(崔)이 그대 표적인 사상가로,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충실하여 항일 의병을 일으켜 싸우기도 했다.
3. 조선왕조의 두번째 대응, 개화론
개화론(論)이다. 우리도 하루빨리 개화하자는 주장이다. 김옥균(金玉均)과 서재필(徐載弼) 같은 청 년들이 그 대표적인 사상가로, 그들은 조정이 일본의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법과 제도를 근대화하자고 주장했다. 「위로부터의 혁명」을 주장한 셈인 이들 가운데는 자유민 주주의 사상 또는 입헌군주주의에 입각한 공화주의 사상 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고자 1884년에 [갑신정변(甲申政變)]를 일으켰다.
4. 조선왕조의 세번째 대응, 농민혁명론
농민혁명론이다. 전봉준(全琿準)이 이끌었던 1894년의 갑호(甲午) 농민전쟁에서 제시되었듯이, 이들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서울로 쳐들어가 썩은 벼슬아 치들을 모두 내고 새 나라를 세울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내세운 셈이었다. 세 갈래로 나뉜 민족의 대응 가운데 유감스럽게도 어느 한 가지도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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